나는 두건을 눌러쓴 인물과 함께 발밑을 조심해 가며 높은 능선을 따라 걸었다. 그는 아래의 악취 나는 골짜기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산처럼 거대한 심장의 고동에 맞춰 거대한 늑골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반쪽짜리 몸뚱이 같은 것이 보인다고 대답했다.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무시무시한 동시에 연약한 몸뚱이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육신을 낳지만, 육신은 약하다. 육신은 불태울 수도 있고, 지져 없앨 수도 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자신과 하나로 남기를 바라지만, 자식은 집을 떠나야만 스스로 설 수 있다. 몽상가는 악몽으로 변하기 전의 그녀를 알았지만, 그것은 슬픔의 기억일 뿐이다. 몽상가는 그녀가 우리의 육신을 거둬 가려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두어선 안 된다. — 환시 I, 40: 탄생
몽상가는 나를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노예들이 삽으로 거대한 연통에 석탄을 부어 넣고 있었다. 그들의 팔다리는 녹아내리고 있었고, 눈은 멀어 있었다. 그는 해골 구덩이를 가리키며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굶주림이 보인다고 대답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끊임없이 집어삼켜야만 존재할 수 있는 욕구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장작은 뜨겁게 타오르지만, 불길은 덧없고 끌 수 있다. 불길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고, 그저 퍼져 나가기만 한다. 몽상가는 집착을 시작하기 전의 그를 알았지만, 그것은 후회의 기억일 뿐이다. 몽상가는 그가 우리를 불태우려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두어선 안 된다. — 환시 II, 18: 불길
몽상가가 나를 금속의 정맥과 고동치는 동맥으로 얽힌 거대한 미궁 속으로 이끌었을 때, 목소리 없는 속삭임이 바싹 마른 이빨이 맞부딪히듯 달그락거렸다. 그는 수정 같은 얼굴이 회전하는 하늘의 중심을 가리켰다. 그 얼굴의 눈은 텅 비었으며, 앙상한 턱은 입만 달싹이며 아무도 듣지 못할 횡설수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머뭇거렸다. 알 것 같았지만, 확신이 없었다. 섬뜩한 살점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살점 없는 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라진 정신은 의지 없이 생각하고, 욕망 없이 결정을 내린다. 아무도 듣지 않는 생각에 목소리를 주고 의미 없는 진리를 해석하기 위해 모든 움직임과 생기를 빨아들인다. 몽상가는 영혼을 내던지기 전의 그녀를 알았지만, 그것은 절망의 기억일 뿐이다. 몽상가는 그녀가 우리의 정신을 삼키려 들 거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두어선 안 된다. — 환시 III, 91: 사고
오랜 여정으로 지친 몽상가는 끝없이 외롭게 줄지어 늘어선 차가운 구덩이 옆에 앉아, 그 아래 말없이 가만히 있는 존재를 가리켰다. 그는 무엇이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겁이 나 한동안 답을 미뤘다. 그 기운은 틀림없었다. 그곳은 묘지였다. 그는 처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보존된 형상들은 죽은 이를 기리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다. 눈은 뜨여 있고, 손은 그들을 예속시키는 얼음 같은 의지에서 벗어나려 뻗은 채 얼어붙어 있다. 몽상가는 아직 열정이 남아 있던 시절의 그녀를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상실의 기억일 뿐이다. 몽상가는 그녀가 우리의 육신을 가두려 들 거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두어선 안 된다. — 환시 IV, 7: 죽음
이제 지친 몽상가는 내게 곁에 앉으라 했다. 꿈속에서 보낸 나의 밤들을 한 바퀴 돌아, 이제 우리는 수도원 바깥에 앉아 있었다. 그는 저 너머의 세계를 가리키며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다.
나는 푸르고, 아름답고, 살아 있는 때 묻지 않은 세계가 보인다고 대답했다. 몽상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넷이 하나가 되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들을 돕고자 했다. 등 뒤에 내려치는 채찍처럼, 그들을 몰아치는 영혼의 고통을 덜어 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반발했다.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공허 속으로 내던졌다. 그들에게는 한때 목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분노와 굶주림뿐이다. 누더기처럼 기워 붙인 그들의 존재는 솔기마다 찢어지며, 자신들의 생각을 비명만으로 채운다. 몽상가는 그들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두어선 안 된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비틀거리다 땅에 누워 잠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로 그 자리, 몽상가가 누워 있던 곳에 있었고, 그 자리에서 기원의 나무가 첫 가지를 틔우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남긴 몽상가의 선물... 벌레집 태생에 맞서는 우리의 무기고다. 우리는 그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 환시 V, 104: 그의 선물